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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소리가 들었다는 보통의 채워진천장에 매달린 남성이 등뼈가 부러질 듯 뒤로 휘어진 채 경련하고 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고통에 사로잡힌 듯한 청동 나체 조각의 표면에 당신의 얼굴이 일그러져 비칩니다. 극적이고 과장된 인체의 표현으로 고통과 불안을 담아낸 이 작품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Arch of Hysteria＞ (1993)입니다. 뒤틀린 동작은 깊은 불안감을 자아내면서도 기묘하게 아름답습니다. 춤을 가르쳐주신 무용가 선생님의 안무에 비슷한 움직임이 있어서, 제게는 마치 이야기를 간직한 춤의 한 동작처럼 다가와 매료된 작품입니다.

(1993) / 사진. ©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JASPAR, Tokyo, and VAGA at Artists Rights 한국쉘석유 주식
Society (ARS), New York"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39813wzwj.jpg" data-org-width="800" dmcf-mid="9kMcFqJqTR" dmcf-mtype="image" height모바일 바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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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르주아 (199꽁머니
3) / 사진. ©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JASPAR, Tokyo, and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몸으로 드러나는 마음: 히스테리를 표현한 조각
히스테리 환자들은 극도의 감정적 충격5년적금
을 받을 때 몸을 뒤로 활처럼 휘며 경련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히스테리는 역사적으로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성별 선택적 질환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는 자궁이 신체 건강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고, 그리스에서는 자궁이 몸 안을 돌아다니며 다른 장기를 누르거나 여러 증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예당 주식
는 1880~1915년 여성 히스테리에 대한 여러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히스테리가 트라우마나 억압으로 생긴 심리적 상처의 결과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히스테리적 증상이 단지 여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자신 또한 오랜 기간 정신분석 상담을 받아온 작가는, 성별을 떠나 과거의 상처와 히스테리적 충동을 직시하고 이를 예술 언어로 변환하는 데 주목했습니다. 심리적 고통과 억제된 긴장이 몸으로 분출되어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2018) 전시 전경 / 사진. © The Museum of Modern Ar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1025jrsi.jpg" data-org-width="800" dmcf-mid="2wOhKPkPCM"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1025jrsi.jpg" width="658">

<루이스 부르주아: 펼쳐지는 초상> (2018) 전시 전경 / 사진. © The Museum of Modern Art


실제로, 배꼽에 매듭이 걸린 채 천장에 매달려 흔들리는 조각의 모델은 부르주아의 평생 조력자 제리 고로보이입니다. 1973년 남편이 사망한 뒤 1980년에 만난 고로보이는 작가를 대신해 갤러리와 언론과 소통하며, 부르주아가 오롯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부르주아는 고로보이를 미술사에 남기고자 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조각 표면은 고광택으로 처리되어 관람객의 얼굴이 뒤틀린 몸 안에 거울처럼 비치게 되어 있어,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안과 흔들림을 되묻는 듯합니다.
서로를 휘감은 위태로운 연인
또 다른 조각 작품 (2007–2009)은 소용돌이를 이루며 서로를 휘감듯 안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는 건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남성의 온몸을 안고 있는데, 고치 안에 감싸인 모습은 심장의 해부학적 구조를 닮아있습니다. 나선형으로 엉켜 영원히 돌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친밀함,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과 연약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2007-2009) Cast and polished aluminum, hanging piece Edition of 6 + 1 AP 154.9 x 76.2 x 66 cm / 61 x 30 x 26 in / 사진. © Hauser & Wirth"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2256bvfj.jpg" data-org-width="800" dmcf-mid="Vgjk3BiBW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2256bvfj.jpg" width="658">

루이스 부르주아 (2007-2009) Cast and polished aluminum, hanging piece Edition of 6 + 1 AP 154.9 x 76.2 x 66 cm / 61 x 30 x 26 in / 사진. © Hauser & Wirth


상처를 꿰매며 자란 소녀
이러한 작품들이 탄생한 배경에는 부르주아의 어린 시절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는 1911년 성탄절 파리에서 어머니 루이 부르주아와 아버지 조제핀 포리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은 직물 벽걸이 그림인 태피스트리를 복원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업이 지금으로서는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요, 당시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태피스트리를 복원해 전시하면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들이 수집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태피스트리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아름다웠기 때문인데요. 어린 부르주아도 섬유의 이미지 일부가 사라졌을 때 대신 그 이미지를 그려 넣으며 일을 도왔습니다.



1915년, 루이스 부르주아와 그녀의 부모 조세핀, 루이 / 사진. © The Easton Foundation


어머니 곁에서 실밥을 꿰매고, 바느질하고, 찢어진 부분을 복원하는 일을 도우며 성장한 것이죠.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부터 찢어진 것을 꿰매고 잃어버린 것을 되살리는 행위를 몸으로 익혔습니다. 예술 창작 작업이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지요. 부르주아의 조각과 설치 작품에 실, 천, 직물, 바느질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06), sewn fabric, 12 parts, each 30.4 x 22.8 cm. Courtesy Cheim & Read and Hauser & Wirth / 사진. © Louise Bourgeois Trust / Licensed by VAGA, New York / Viscopy, Sydney."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4758rubc.jpg" data-org-width="800" dmcf-mid="4fSTfRrRW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4758rubc.jpg" width="658">

루이스 부르주아 (2006), sewn fabric, 12 parts, each 30.4 x 22.8 cm. Courtesy Cheim & Read and Hauser & Wirth / 사진. © Louise Bourgeois Trust / Licensed by VAGA, New York / Viscopy, Sydney.


사업은 승승장구해 아버지가 태피스트리 복원 사업을 확장할 무렵 어머니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앓았습니다. 그녀가 다섯 살이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회복되지 않아 요양해야 했고, 어린 부르주아마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학업을 자주 중단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더 똘똘 뭉쳐야 할 시기에 아버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영국인 가정교사가 집에 들어와 10년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아버지와 대놓고 불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1932년 부르주아가 21살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애증은 어른이 된 부르주아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통의 기억이 예술로 이끌다
부르주아의 예술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경험한 불안과 고통을 몰아내려는 몸부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두 달 뒤, 부르주아는 파리의 명문 리세 페넬롱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고 소르본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우울에 빠진 부르주아는 곧 예술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마음에 눌러둔 불안을 예술로 표현해 마주하면 가슴에 맺혀있던 무언가가 풀리는 듯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경험, 있으신가요? 아마 부르주아에게 예술은 숨 쉴 수 있고 내 안의 깊고 어두운 이야기까지 풀어놓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구원의 통로처럼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부르주아는 열정적으로 미술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녀는 에꼴 데 보자르와 에꼴 뒤 루브르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동시에 화가들의 스튜디오에 찾아가서도 배웠는데요. 이때 만난 스승이 바로 입체주의 회화의 거장인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입니다. 그는 부르주아의 감각이 단지 회화에 머물지 않고 3차원 입체를 구현할 수 있는 조각적 성향에 가깝다고 발견해 주었습니다.

(1922) / 사진. © Centre Pompidou / Photo : Ch. Bahier et Ph. Migeat / Dist. RMN-GP"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6021buuo.jpg" data-org-width="800" dmcf-mid="8oOCb6c6W6"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6021buuo.jpg" width="658">

페르낭 레제 <서 있는 두 여인> (1922) / 사진. © Centre Pompidou / Photo : Ch. Bahier et Ph. Migeat / Dist. RMN-GP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부르주아는 1938년, 미국 미술사가 로버트 골드워터를 만나 3주 만에 결혼한 뒤 뉴욕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때부터 2010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미국에서 거주하며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동시에 세 아들을 낳고 키우며 어머니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부르주아는 판화를 공부하며 1945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40년대 중반에는 아파트 옥상에서 발견한 나무로 조각을 만들기 시작해 1949년 조각 작품을 주로 하는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이후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윌렘 드 쿠닝 등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하기도 했고, 마르셀 뒤샹, 앙드레 브르통, 호안 미로 같은 유럽 예술가들과도 교류했습니다.
이렇게 뉴욕에 정착해 예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부르주아는 애증의 대상이던 아버지가 195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후 다시금 깊은 상실을 경험합니다. 부르주아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정신분석가이자 의사인 헨리 로웬펠드와 1952년부터 1982까지 3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고, 그 과정을 방대한 양의 글로 기록하며 남겼습니다. 부르주아는 삶과 예술을 긴밀하게 연결하며 인생을 작품에 반영하는 예술가였기에 정신과 치료의 경험 역시 작품에 정신분석학적 면모를 더하게 됩니다.

(2003) / 사진제공. Courtesy Hauser & Wirth and Cheim & Read. / 사진. Christopher Burke, © Louise Bourgeois Trus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7256xjrh.jpg" data-org-width="800" dmcf-mid="6tiLG3P3y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7256xjrh.jpg" width="658">

루이스 부르주아 (2003) / 사진제공. Courtesy Hauser & Wirth and Cheim & Read. / 사진. Christopher Burke, © Louise Bourgeois Trust


폭력적 환상과 원초적 감정
무대처럼 정면이 보이는 유리관 안에 붉은 빛이 가득합니다. 식탁 위에는 조각난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분위기가 서려 있습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이 작품은 부르주아가 선보인 ＜아버지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1974)입니다. 입주 가정교사와 외도한 아버지를 증오했던 소녀 부르주아는 식탁에서 아버지를 끌어 내려 팔과 다리를 먹어 치우는 끔찍한 상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더 복잡한 심리적 기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974) / 사진. © Hauser & Wirth"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8484yqfi.jpg" data-org-width="800" dmcf-mid="Pj9ugDXDv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5/ked/20250915083548484yqfi.jpg" width="658">

루이스 부르주아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 사진. © Hauser & Wirth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엣 미첼은 부르주아의 예술적 실천을 '여성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무의식적 사랑과 경쟁, 죄책감이 뒤섞인 심리적 갈등을 말합니다. 남자아이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경쟁자로 느끼며, 여자아이도 비슷한 감정을 겪는다는 이론입니다. 프로이트의 전통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남성 중심의 서술임에 반해, 미첼의 견해는 조금 방향을 달리합니다. 즉, 딸이 부모와 맺는 복합적 감정인 애착과 경쟁, 분노와 보호에 대한 갈망을 중심에 두고 작업했다고 본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불륜을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그에 대한 의존과 애착을 완전히 끊을 수 없었던 부르주아는, 아버지를 해체하면서도 그의 일부를 흡수하려는 양가적 욕망을 작품으로 극화했습니다.
부르주아 작품에서 나타나는 신체 단편들, 알과 주머니 같은 구조물, 식인적인 이미지들은 모두 욕망과 공포, 애착이 혼재된 오이디푸스적 서사의 현현입니다. 이러한 신체적 상징들은 추상적 심리를 물질적 형태로 번역하는 부르주아만의 예술 언어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부르주아 작품의 전부는 아닙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오이디푸스적 읽기가 유효하지만, 작가의 철학적 관심이나 페미니즘적 맥락으로도 다층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는 개인적 트라우마를 넘어 여성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위치, 모더니즘 조각의 전통에 대한 도전 등 더 넓은 미술사적 맥락 안에서 읽혀야 할 복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르주아의 작품이 지닌 강렬한 심리적 충격과 신체적 직관성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아버지의 파괴＞ 앞에 선 관객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잠재된 원초적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몸에서 실을 뽑아내는 거미, 나의 어머니
내 안의 무언가를 뽑아서 끌어낸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습니다. 긴 시간을 들여 글을 쓸 때나 어떠한 일에 몰두할 때 그러합니다. 마치 몸에서 실을 뽑아내는 거미처럼 말이지요. 부르주아는 자신의 예술이 몸에서 직접 나온다고 여겼습니다. 1990년대부터 만들기 시작한 거미 조각은 자화상이자 어머니를 상징하는 형상입니다. 태피스트리 복원가로 한평생 실을 만지며 일한 어머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희생했습니다.
거미는 자기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집을 짓고 먹이를 사냥합니다. 가느다란 거미줄은 투명하고 여려 보이지만 강철보다도 강한 인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소녀였던 여자가 어머니의 정체성을 갖게 되면 자녀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창조와 보호, 그리고 인내로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르주아가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70세가 넘어서의 일입니다.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는 MoMA 역사상 여성 작가 개인에게 바쳐진 최초의 회고전이었고, 이때부터 부르주아는 뒤늦게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80세가 넘어서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간 그녀는 1990년대부터 자신의 대표작이 될 거대한 거미 조각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2000년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 홀 개관을 기념해 설치된 ＜Maman＞ (1999)과 같은 대형 조각들은 모두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들입니다. 높이 9미터에 달하는 청동 거미가 관객을 내려다보는 광경은 압도적이면서도 신비롭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1999) / 사진출처. Wiki Art






1996년 뉴욕 아틀리에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모습 / 사진. © Peter Bellamy / © The Easton Foundation / Adagp, Paris 2020


고통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언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 끝내 아름다움을 빚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의 순간들이 트라우마로만 머물지 않고 예술의 재료가 되어 표현될 때, 그 아름다움은 미세한 틈새에서 스며 나오는 한 줄기 찬란한 빛처럼 다가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생의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자신만의 언어를 더욱 완전하게 빚어냈다는 점입니다. 젊은 시절의 작업들이 고통스러운 기억과 정면으로 맞서는 양상이었다면, 여든을 넘긴 뒤 시작된 거미 연작은 그 고통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결실이었습니다. 1974년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설치 작품 아버지의 파괴가 가족의 상처를 해체해 드러냈다면, 1990년대의 거미들은 보호하고 창조하는 어머니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작가의 내면을 치유하고 새롭게 길을 열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였습니다.
죽음을 불과 두 해 앞둔 아흔여덟의 나이까지도 작업실로 향했던 부르주아. 그녀의 작품 앞에 서면 묘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아름답다고만 하기엔 불안이 스며 있고, 무섭다고만 하기엔 애틋함이 남아 있습니다. 부르주아의 미학은 바로 이 모순의 자리에서 피어났습니다. 그녀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끝내 직면했으며, 두려움을 예술로 전환해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길어 올렸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진실한 언어와 깊은 아름다움은 찬란한 순간에서만 태어나지 않습니다. 고통과 제약,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며 다루느냐에 따라, 삶은 마침내 빛을 품은 언어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것이야말로 고통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언어이며, 우리가 예술 앞에서 끝내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김민지 경기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