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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국회에 한복이 들어왔다. 해프닝같던 이 풍경을 나는 우리 문화사의 큰 기점으로 보고 있다.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공식 석상 외에도 늘 한복을 입는다. 민속학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 한복 퍼포먼스를 보는 관점이 그래서 남달랐는지 모르겠다. 한복이 사건으로 다루어진 사례가 우리 역사에서 있었나 연구해봐야겠지만, 이번 퍼포먼스를 다루지 않는다면 민속학도의 직무유기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정한 이름이 '국회 개원 한복 사건'이다. 국민주권 정부 출범 후 개막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갈아타기 한 정기국회 개회식에 한복이 등장한 것이 괄목할만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주지하듯이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하여 이루어진 민주당 측 옷차림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상복 차림으로 등원하였다. 이를 두고 한복과 상복의 충돌이라느니 보여주기쇼라느니 추태라느니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풍경을 강렬한 시선으로 읽었다. 의복은 말에 앞서는 언어다 올크레딧 마이크레딧 . 특히 서구 양식으로 의복이 전환된 이래 한복이 갖는 기호와 함의는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한복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일상복이자 의례복으로 기능해왔다. 하지만 근대화와 서구 복식의 도입으로 인해 시나브로 예복화 혹은 상징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옷이 한복이다. 그중 일부가 명절 등 시 주말즉시대출 대적 맥락 속에서 소환되었고 변용되어 생존했다. 생활한복 따위도 그중 하나다. 근자에는 개인의 실천, 문화산업화 특히 K컬처, 국가적 퍼포먼스라는 다층적 장면에서 부각되고 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가 그 단면을 보여주었다. 




골든브릿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비가 내리자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비를 피해 뛰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복의 변천과 변용 혹은 지속 한복(韓服)에 대한 개념부터 설왕설래가 많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의복, 특히 조선 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을 이르며, 현재는 격식 추가담보대출 을 차리는 자리나 명절, 제례 따위에서 주로 입는다. 남자는 통이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넓은 바지를 입고 아래쪽을 대님으로 묶으며, 여자는 짧은 저고리에 여러 가지 치마를 입는다. 발에는 남녀 모두 버선을 신는다. 출입할 때는 예복으로 두루마기를 입는다." 조선옷이라고도 한다. 1897년 우리나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우리나라의 옷이라는 뜻으로 '한복'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1898년 독립신문 기사에 '복'이 출현한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의 기사에는 '대한 녀복, 한국 의복' 등의 용어와 '조선옷'이 혼용된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무렵에 '조선옷'이라는 맥락의 의복을 '대한제국의 옷'이라는 뜻의 '한복'으로 사용하다가 굳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고궁 나들이에 소요되는 한복을 두고 어디까지 한복으로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1980년대부터 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한복을 세계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한복의 선과 색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개성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되살려 고부가가치 패션 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봤다. 요컨대 이때부터 1990년대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 옷을 세계의 언어로 번역하자고 주장했던 셈이다. 이 초기 담론은 이후 2000년 밀레니엄기를 맞으며 한복을 국가 브랜드로 다듬는 토대를 마련한다. 2010년대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고궁과 도심에서 한복 대여와 착용이 일상체험으로 정착되기에 이른다. 한복 대여점이 급증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이용객들이 수백 명에 달했고 수십만 건의 SNS 게시물 업로드가 이른바 체험-인증-공유의 문화적 순환으로 활성화되었다. 이를 일부 연구자들은 개인의 주체적 실천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한복동호회 이용자들은 한복을 예쁜 옷,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입는다. 이때의 한복은 전통을 매개하는 물질이자 전통성과 현대적 욕망을 중개하는 장치로 자리 잡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명절에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오랜 관념은 생활한복이나 개인 취향 등으로 시나브로 해체된다. 더이상 공동체를 지속하는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지 않게 되고 개인의 취향과 놀이의 언어로 환원된 셈이다. 국가주의, 경제주의가 주도하던 전통의 동원방식에서 벗어나 비영리적, 비동원적 개인 실천의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한복은 전통유산이라기보다는 '현재의 나'를 표현하는 개인 영역의 재구성이라고 봐야 한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한복이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지속적 실천이 전통을 유지 시키는 동력으로 환원되었다. 2010년대 이후 2020년대까지 정부는 신한복 개발, 한복 입기 체험 확산, 찾아가는 한복 교육, 해외문화원 연계 전시와 패션쇼 등 생활화와 세계화 패키지를 착착 추진했다. 2018년에는 전통문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정책 기조가 강화되었다. 외교부, 영화진흥위, 한국국제교류재단 등과의 협업으로 드라마, 영화, 이벤트 등을 통한 한복의 간접 확산이 본격화되었다. 이는 한복이 문화외교의 콘텐츠이자 의전 전반에 작동하는 자산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학계에서도 한복 연구를 정체성-세계화-산업화-디지털미디어라는 복합 변수 체계로 읽어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한복은 디자인과 디지털에 K콘텐츠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남도인문학팁-2025년 국회 개원과 한복 사건, 기록되어야 할 한 장면의 힘1990년대의 세계화 상상력이 밀레니엄기와 2010년대의 개인적 실천을 만나 2020년대 정책, 외교의 언어로 편입되는 일련의 맥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서사를 전제해야 2025년 국회 개원식 한복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개인의 실천이 국가적 퍼포먼스로 변환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상징 퍼포먼스는 제도와 공동체의 자의식을 시각화한다. 국회 개원식에 한복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그동안 개인들이 서울의 여러 거리와 고궁, SNS에서 축적해온 한복의 현재성이 마침내 국민주권의 언어로 번역되었음을 뜻한다. 입법부의 가장 중심 공간에서 그것도 새정부의 첫 개원일에 한복이라는 전통복식이 집단 드레스코드로 호출되었다는 점에서 전통의 권위적 재영토화를 이루었다고나 할까. 특히 이 사건은 한복=민속축제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국가 최고 공론장에서 전통이 공적 권위를 표상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것은 일시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가 아니다. 1990년대의 세계화 프레임, 2000년에서 2010년대 개인적 실천의 프레임(자기표현의 사회적 승인), 2020년대의 정책 외교 프레임(생활화, 국가 브랜딩)의 단계적이고 점층적인 서사가 정치적 퍼포먼스로 드러난 결절이라고 봐야 한다.
국회 개원 한복 퍼포먼스가 갖는 의미를 짧게 요약해둔다. 첫째, 권위의 재구성이다. 서구식 정장이라는 근대 권위 유니폼 대신 전통복식이 민주주의의 권위 언어로 채택되었다. 한복의 진정성이 사회적 승인을 얻어 국가 의례의 정당성 언어로 스케일업되었다. 둘째, 상징정치의 다원화이다. 의복의 기호학이 다양해졌다. 동일한 공간에서 전통, 현대, 화합, 저항 등 상이한 코드가 경쟁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이 자체가 공화정의 건강한 징후다. 셋째, 문화자존감의 가시화이다. 우리 옷이 오랜 사회변동 속에서 맥을 이었다는 서사의 발견은 이제 현재의 자신감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세계화의 대상이던 한복을 주권의 언어로 되돌려 놓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가가 전통을 호출한 날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축적된 실천이 국가의 언어가 된 날이다. 문화체육부 등 문화 관련 기관이나 연구자들은 이 한 장면의 힘을 허투루 여기지 말고 명실상부한 나라의 기운으로 번역해나가길 바란다. 국회 개원 한복 사건은 충분히 그럴만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