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애플바움 존스홉킨스대 연구원/ 애플바움


“한국은 더 이상 서구 민주주의 연합에서 부차적 역할에 머물던 나라가 아닙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역사학자로 민주주의의 약화와 권위주의의 부상을 연구해 온 앤 애플바움(Anne Applebaum) 미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학대학원(SAIS) 선임연구원은 지난 4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미 정치·경제적으로 선도국이며, 미국 없이도 민주주의 국제 연대를 설계할 수 있는 나라”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서도 그는 “한국과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경제 파트너지만 한국은 이제 유럽, 일본, 호주 등과도 마이크레딧 무역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해방 80주년을 맞은 한국의 여정은 민주주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나.
“한국은 전쟁으로 나라가 파괴된 상태에서 아시아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고 모범이 되는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완전히 폐허가 된 나라가 독재 시기를 지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제품, 영화, 소설, 대중 미국 자동차 회사 음악을 만들어 내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하고 놀랍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내게 ‘적대적인 이웃과 식민 점령에도 어떻게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라는 점에서 한국을 모델로 삼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의미는 ‘민주주의는 유럽의 특정한 전통이나 지리·역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신한은행서민전세자금대출-한국의 경제는 성장했지만 정치적 분열은 심해지고 있다.
“정치 양극화는 전 세계의 문제다. 세계화로 ‘억만장자 계층’이라는 일반 국민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한다. 분노, 갈등, 대립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소셜미디어의 등장도 이유다. 사람들은 각자의 ‘정보 거품’ 농협적금이자율 속에서 살게 됐다. 이런 상태에서는 도로 하나를 어디에 놓을지조차 논의하기 어렵다.”
-정당보다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의 등장은 민주주의의 쇠퇴인가?
“인플루언서가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이들은 실제 정치인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뉴욕 시장 선거에 나선 민주당 맘다니 후보(5일 당선 확정됨)는 짧은 동영상 포 중국 인터넷 맷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능숙하다. 신문 기고나 TV 인터뷰만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는 끝났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선하게도, 악하게도 쓰일 수 있다. 이런 도구를 건설적으로 사용할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이 등장하길 바란다.”



본지와 화상 인터뷰 중인 앤 애플바움 존스홉킨스대 선임 연구원. “민주주의 세계는 여전히 가장 안정되고 부유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박국희 특파원


-트럼프 대통령은 권위주의 스타일에 가깝다. 미국을 민주주의의 모델로 삼아온 나라들은 혼란스럽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한국은 이제 미국을 모델로 볼 필요가 없다. 한국이 민주주의 연합의 ‘주니어 멤버’로 자신을 인식하던 시대는 끝났다. 한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선도국이다. 이제는 미국 없이 아시아 안보를 어떻게 설계할지, 미국 없이 민주주의 국제 연대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우크라이나 방위 문제를 논의할 때 한국이 유럽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을 봤다. 이런 접근이 앞으로 중요하다. 미국을 경유하지 않고 가치가 비슷한 나라들과 직접 협력하는 시대가 왔다. 미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연합이나 일본 등과의 직접 관계도 새롭게 생각해야 할 때다. 지금은 냉전 후 만들어진 국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무역 협정을 타결했다.
“미국과 한국은 강력하고 상호 보완적인 경제 파트너다. 양 국민은 여전히 많은 가치를 공유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동등한 관계나 상호 이익적인 경제 협정을 믿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유럽, 일본, 호주 및 다른 국가들과 함께 무역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러시아·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은 서로의 정당성을 보완하는 반면, 민주주의 진영은 동맹 간에도 내부 불신이 커지는 모습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민주 국가들이 직접 협력하고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뉴욕·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관료가 모인 국제기구’ 같은 20세기식 개념은 낡았다. ‘의지 있는 국가들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이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연합이나 팬데믹 당시 백신 배포 협력처럼, 특정 목적을 위해 자유롭게 결집하는 방식이다. 21세기에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면 어떤 교훈을 남길까.
“우크라이나가 주권을 유지한 채 유럽과 통합된다면 민주주의의 대승리다. 작은 나라라도 자신이 원하는 정치 체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이 입증되는 셈이다.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침략하거나 점령해서는 안 된다’는 1940년대 유엔 헌장 정신은 무너진다. 중국은 ‘우리도 대만에 같은 일을 해도 되겠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 전쟁은 향후 세계 질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시험이다.”
-지난달 한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어떻게 봤나.
“중국의 승리라고 본다. 중국은 희토류를 통해 미국을 협박하는 등 관세의 한계가 드러났다. 주식 시장이 상승하고 갈등이 끝난 것처럼 보여 사람들이 안도한다는 것을 알지만, 미·중 무역 조건은 1년 전보다 여전히 나빠진 상태다.”
-중국은 ‘팀 차이나’로 국가를 조직해 놀라운 효율을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는 분열과 단기주의로 장기 전략이 어려운데.
“독재 체제를 이상화하는 건 착각이다. 독재국 대부분은 가난하고 부패했으며 비효율적이다. 사람들은 중국만 얘기하고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는 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세계는 여전히 가장 부유하고 안정된 지역이다. 다만 정치적 분열과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장기 계획이나 공통의 대화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이 등장해야 한다. 신문을 읽지 않는 세대, TV 뉴스를 보지 않는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장기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10여 년간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과 계엄 위기를 거쳤다.
“한국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슷한 분열을 겪고 있는 듯하다. 다만 한국은 아직 헌법 질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법 위에 서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 그 점에서 보면, 미국보다 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붕괴된다면 한국이 직면할 도전은 무엇일까?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잃었다고 느꼈다. 한국은 남북 경제·정치 수준 차이가 훨씬 크기에 더 어렵다. 북한 주민들이 ‘2등 시민’처럼 느끼지 않도록, 남한의 세련된 체제가 오만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얼마나 관대하고 포용적으로 접근하느냐가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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