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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목걸이를 불만을 뭘? 뭐야? 내 한만해축전과 만해대상을 만들어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려온 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 속명 '조오현 스님'으로도 잘 알려졌다. /전기병 기자


“스님들의 말이, 교황님 그리고 사업가의 대학 졸업 축사나, 시나리오 작가의 수상 소감처럼 감동을 주거나 회자되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애플의 스티브 잡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시나리오 작가(그레이엄 무어)를 ‘경쟁 상대’ ‘라이벌’로 여긴 스님이 있습니다.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을 지낸 무산 스님(1932~2018)입니다. 지난번엔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만든 무산 스님의 ‘만해 장사’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무산 스님의 ‘혁신가’적인 면모에 국토해양부주택기금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은 지난 2015년 3월 백담사 무금선원에서 열린 동안거(冬安居) 해제 법회 자리에서 무산 스님이 한 말입니다. 동안거란 겨울철, 즉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석 달간 선승들이 선원에서 바깥출입을 끊고 화두 참선에만 몰두하는 집중 수행 기간입니다. 여름 안거인 하안거는 음력 4월 보 신청 름에서 7월 보름까지입니다.
안거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는 법회가 열리고 그 사찰의 최고 어른이 말씀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보통 엄숙하고 당송 시대 선승들의 화두를 예로 들면서 정진(精進)을 당부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날은 달랐습니다. 우선 형식부터 ‘퀴즈’였습니다.
“내가 상금을 걸 테니 한번 맞혀보시오. 2005년 이 아트하우스 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말이 뭔가?” ‘힌트’는 2005년이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한 ‘정답’은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즉 “끊임없이 탐구하고, 끊임없이 어리석으라”였습니다. 바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이미테이션 게임’ 작가의 말로 이어졌습니다. 저축은행사금융 무어는 그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고 소감으로 “이상해도 괜찮아, 남과 달라도 괜찮아(Stay weird, stay different)”라고 말했지요. 스님은 이 말을 인용해 “노망 들어도 괜찮아”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스님은 그해 동안거를 ‘독하게’ 했습니다. 여러 선승이 큰방에 함께 앉아서 참선하는 방식이 아니 햇살론신청은행 라 ‘무문관’ 수행을 했습니다. 무문관은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근 작은 방에서 하루 한 끼 밥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밥을 먹으며 혼자 석 달 동안 수행하지요. 외부와의 소통은 밥구멍에 쪽지를 남기는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80대의 노스님으로선 쉽지 않은 수행입니다. 스님은 무문관에 들어가기 전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노망이 들어 무문관에 있습니다. 금족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전화 못 받습니다. 3개월 보내고 해제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스님이 이런 문자를 보내고 무문관 수행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인제군의 한 여학생이 이 뉴스를 봤다고 합니다. 고교에 진학할 나이였던 그 학생은 무산 스님에게 장학금을 받고 있었는데, 그 뉴스를 보고 걱정이 됐다네요. ‘스님이 노망이 들면 안 되는데, 학자금도 못 받고 대학도 못 가는데….’ 그 학생은 백담사로 찾아왔지만 스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밥구멍’에 쪽지를 남겼답니다. “노망해도 괜찮아요.” 스님은 “그 학생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도 ‘이상해도 괜찮다’고 그랬다면서 나한테도 ‘노망해도 괜찮다’고 쪽지를 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안거 해제 법문으로는 파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지요. “내가 늘 생각했어요. 이거 해제, 결제 법문, 천 년 전 고승들의 이야기를 지금 해도 과연 괜찮은가? 뭐 삐까번쩍한 이야기가 없나? 잡스 같은 사람이 한마디 하면 세계가 열광하는데, 스님들이 한마디 해도 세계가 열광하고 이래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이 여학생의 편지를 받고 보니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이 2015년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법문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거를 마쳤다는 증서. 이날 법회에서 스님은 스티브 잡스 대학 졸업식 축사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각본가의 수상소감을 인용해 법문했다. /신흥사, 조게종 제공


이건 예고편이었습니다. 스님의 파격은 그해 하안거, 즉 여름 안거가 끝나는 자리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무산 스님은 본격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話頭)와 우리 선승(禪僧)들의 화두가 시간적으로 1000년의 차이가 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의 문제가 화두인데,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1000년 전 중국 선승들의 도담(道談)이다.”



생전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입맞추고 있다. /


무서운 ‘자기반성’입니다. 스님은 이미 2012년에도 ‘화두 중독’을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중국 당송 시대의 선사(禪師)들을 ‘신선(神仙) 주의자’ ‘산중 늙은이들’이라고 했습니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처음 공개된 ‘아이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 시대에 화두는 천 년 전에 늙은이들이 씨불인 거요. 화두를 깨버려야 해요. 화두에 집착하면, 알코올 중독자가 중독되는지 모르고 중독되듯이 화두 중독자가 되어버리면 일생을 만날 무, 무, 무... 하다 말아요. 표현이 지나치지만, 마약 중독자는 자기가 마약 중독자인 줄 몰라요. 마약만이 자기 살길이라고 믿고 마누라도 팔아먹고 집도 팔아먹으면서…. 지금 선방 스님들도 화두에 중독돼 있는 거야. 어느 큰절에 가보면 ‘공부하다 죽으라’고 그러는데, 그래 자기가 평생 공부하다가 절 받고 돈 받고 존경받고 저 혼자 산중에 앉아서 잘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깨달았으면 깨달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게 아닌가?”
무산 스님은 항상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전설적인 말은 그들의 화두이고 그들의 삶일 뿐” “1000년 전 중국 화두에 중독되지 말라” “그들은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 있는 곳에 머물지 말라’ 했는데 우리 선승들은 아직도 1000년 전 그네들의 도담에 머물러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부처 될 생각 말고, 화두에 속지 말라”고도 했지요.
불교에서는 정신 번쩍 들게 내리치는 몽둥이[棒]나 고함[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산 스님의 법문은 방이고, 할이었습니다.
서두에 ‘혁신가’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무산 스님의 이 발언들에서 혁신가적인 면모를 보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지요. 잡스가 문을 연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전화기 속에 컴퓨터를 집어넣었지요. 이제는 스마트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그만큼 세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온 얼마 후 출장길에 외국의 한 공항 대합실에서 감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앉아서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선을 화면에 박고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천지창조 이후로 전 세계인이 이렇게 똑같은 동작을 하도록 만든 사람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스님은 잡스의 축사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에서 그 혁신의 정신을 보았고, 그 어떤 화두보다 더 강렬하게 느꼈던 것이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혁신가였습니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활기를 잃어가던 가톨릭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교황 취임 때부터 선종할 때까지 교황청 방문객 숙소인 ‘성 마르타의 집’에서 살았지요. 교황청 내의 아파트를 마다하고요. 그러면서 교황청의 관료주의를 질타했고, 사제들에겐 ‘영적 웰빙’에 빠지지 말라고 주문했습니다.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고, 마피아를 파문했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고, 2014년 방한 때 우리도 목격했듯이 그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였습니다. 먼발치에서라도 그의 모습을 직접 보고,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서였지요. 그렇게 그는 800년 전 프란치스코 성인(1181~1226)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가톨릭을 혁신하려 했습니다.
스님은 바로 이런 혁신적인 기풍을 우리 불교에도 불어넣으려 애썼습니다. 스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화제가 되고, 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출가자로서의 밥값’을 강조한 것입니다.
선승들에게 저런 질타를 했다고 하니 무산 스님은 수행이나 선승들을 싫어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드시지요? 아닙니다. 스님은 누구보다 수행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선승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울타리가 돼준 분입니다. 선승이 되려는 출가자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기초선원’을 백담사에 유치한 것도 무산 스님입니다. 그런 분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라고 일갈했으니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무산 스님은 이런 말도 했지요. “비구(比丘)나 시인으로는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 경허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고요.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성직자들에게는 강한 도덕성을 요구했지만 죄수들과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 주고,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한 항구를 방문해 난민들을 위로하는 세계 가톨릭 수장의 모습이 스님에겐 혁신의 모델이자 ‘라이벌’로 느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 역시 출가자에겐 추상같았지만 재가자에게는 봄 햇살처럼 따뜻했습니다. 행사 때에는 마을 노인회장을 가장 상석(上席)에 모셨고, 사찰의 부엌에서 일하는 분들의 자녀와 인제군의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지급하곤 했습니다. 염장이, 대장장이, 주모의 말이 팔만대장경이라고 했지요.
스님은 “출가 생활은 일탈(逸脫)”이라고 했습니다. “부모·형제 버리고 출가하는 것 자체가 일탈 아닌가.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 일탈은 세상에서 비난받는 그런 일탈이 아닙니다.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는 일탈입니다.
스님은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라고 했습니다. “부처의 삶을 사는 사람이 곧 부처입니다.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를 붙들고 참선만 해서는 부처가 되지 않아요”라고도 했지요.
프란치스코 교황과 무산 스님은 ‘예수의 삶’ ‘부처의 삶’을 살자고 우리에게 권유했던 것이지요. 종교의 혁신, 개혁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생전의 무산 스님 방에는 해골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두개골을 스캔해서 석고로 만든 해골이었지요. 수시로 그 해골을 쓰다듬고 어루만졌지요. 항상 죽음을 의식했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였습니다.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점을 잊지 않으면서 항상 혁신하려 했던 분, 그런 분이 무산 스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산 스님과 스마트폰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무산 스님은 연세에 비해 ‘스마트폰의 달인’이었습니다. 문자 메시지도 직접 잘 주고받았고, 뉴스도 잘 찾았고, 검색도 잘 하셨습니다. 스님은 2014년부터 안거 때마다 무문관에서 수행했습니다. 석 달씩 두 번이니 1년의 절반은 무문관에서 바깥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한 것이죠. 그렇지만 스님은 항상 ‘삐까번쩍한 법문’을 연구했습니다. 스님은 중국 당송 시대 스님들의 일화나 화두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습니다. 눈 감고도 줄줄 욀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본인 스스로 ‘화두에 중독되지 말라’고 했고, 혁신을 꿈꾸었으니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그때 필요한 것이 스마트폰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문관에 들어갈 때에는 스마트폰은 반납해야 합니다.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면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현재의 문제를 화두로 제시하기도 어렵지요. 세상에 회자될 이야기 거리를 찾기도 힘들고요. 그렇지만 무산 스님은 거의 매번 시사를 곁들여 듣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발언을 하셨지요. 그렇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무산 스님이 살짝살짝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반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곤 합니다. 안거 해제를 앞두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며 고민하는 스님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제 핸드폰에는 스님과 나눈 문자가 아직 저장돼 있습니다. 2018년 1월 1일은 음력 11월 보름이었습니다. 새해 인사 겸 아파트 단지에서 본 보름달 사진을 찍어 스님께 보내드렸지요. 이튿날 답장이 왔습니다. “아파트 참 좋다. 달 참 밝다. 설악무산 합장.” 무산 스님과 나눈 마지막 문자입니다. 이때도 동안거 기간이었습니다. 반칙이라도 괜찮습니다. 스님께 문자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무산 스님이 지금 세상을 보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