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속에 꽃들도 이미 잠들었단다.줄기 위로 꽃이 머리를 숙이는구나.나무에 핀 꽃이 떨고 있어,마치 꿈을 꾸듯 뒤척이면서 말이야.자러 가렴, 자러 가렴, 내 소중한 아이야!
- 브람스 ‘잠의 요정(모래 요정)’ 가사 일부
10월 17일 오전, 함부르크 스펙슈트라세 60번지. 1943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이곳은 ‘골목길 구역(Gängeviertel)’이라 불리는 도시 빈민 노동자들의 공동주택이 있던 자리다. 브람스는 이 비좁은 목조 건물의 단칸방에서 태어났다. 아기 브람스가 떠올라서였을까. 브람스가 슈만 부부의 아이들을 위해 작곡한 ‘잠의 요정’이 들리는 듯했다. 바다이야기게임 함부르크의 10월은 짙은 먹구름과 안개가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 우울증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브람스의 생가 터에는 기념비 하나가 애처롭게 서 있었다.
“1833년 5월 7일 브람스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1906년 함부르크 시민사회 중앙위원회가 설립했다.” (AN DIESER STAETTE IST JOHANNES 바다이야기오리지널 BRAHMS AM 7. MAI 1833 GEBOREN WORDEN. GESTIFTET VOM ZENTRAL AUSSCHUSS HAMBURGISCHER BURGER VEREINE 1906.)



브람스 생가 터의 기념비 / 사진. © 유혁준

바다이야기릴게임
브람스의 도시, 함부르크
음악가 중 브람스만큼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인물이 있을까? 멘델스존은 태어나자마자 베를린으로 이사했고, 말러는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지휘자로 잠시 거쳐 갔다. 아돌프 하세,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텔레만,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알프레드 슈니티케는 성인이 되어 함부르크 모바일야마토 에 정착했다. 조상 대대로 북독일에 살았던 브람스야말로 진정한 함부르크 사람이요, 30대 후반인 1869년까지 고향에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최초로 브람스 전기를 출간했던 막스 칼베크(1850~1921)에 따르면 ‘브람스’라는 성은 ‘브람(Bram)’을 어원으로 한다. 브람은 북독일 다트마르쉔 지역의 모래 황무지를 물들이는 노란 들꽃 바다이야기하는법 , 즉 양골담초(洋骨擔草)를 의미한다. 이 어원은 함부르크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지금도 독일 제2의 도시인 함부르크는 과거 한자 동맹의 중심 항구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도시는 각국에서 온 상인과 선원을 대상으로한 매춘이 성행했고 술집과 빈민가가 즐비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극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브람스의 탄생은 황무지를 뚫고 피어나는 한 떨기 ‘브람’과도 같은 기적이었다.
브람스는 생전에 아버지가 단원이었던 함부르크 필하모니의 지휘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 도전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죽기 1년 전인 1894년 함부르크필로부터 제의가 왔을 때 61살의 브람스는 경멸에 가득 찬 회신을 보내 거절했다. 유럽 음악계 최고 스타였던 자신을 고향의 악단이 진작에 알아주지 못한 서운함이었다.
G20 세계 정상들 결집, 엘브필하모니의 상징성
그로부터 1세기도 훌쩍 넘긴 2017년 1월 11일. 함부르크 필하모니의 후예인 NDR 엘브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이하 NDR)가 새롭게 문을 연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역사적인 첫 공연을 열었다. 토마스 헨겔브록의 지휘의 개막 공연에서는 베토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 멘델스존 ‘루이 블라스’ 서곡, 브람스 교향곡 2번 4악장이 울려 퍼졌다. 이어 카발리에리, 카치니에서부터 볼프강 림의 신작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피날레까지 음악의 축포를 터뜨렸다. 새로운 ‘창조물’ 엘브필하모니가 함부르크 태생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작품으로 서막을 연 것이다.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 / 사진. © Thies Raetzke


같은 해 7월 7일 G20 정상들은 이곳에 결집했다. 각국 정상들은 엘브필하모니 객석에 앉아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감상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독일의 한 공연장에 집중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당시 메르켈 독일 총리는 왜 베를린 필하모니홀이 아닌,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까지 각국 정상들을 데리고 왔을까?
이는 함부르크가 독일 대표 작곡가인 브람스의 상징성과 함께, 제2의 도시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곳에는 도시 재건에 얽힌 흥미로운 서사도 담겨있다. 
현재 함부르크 하펜시티에 있는 그로스브룩 반도에 1875년 당시 빌헬름 1세 황제를 기리는 카이저슈파이허(Kaiserpeicher)가 건설되었다. 건물 꼭대기 탑에는 시간공(Zeitball)이 달려 있어 선박이 정확한 시간을 맞출 수 있었고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부두의 창고’를 뜻하는 카이슈파이허A(Kaispeicher A)로 이름을 바꿨는데 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다 1963년 함부르크 출신 건축가 베르너 칼모르겐이 설계한 새 저장고가 세워지기에 이른다. 수입한 코코아와 커피, 담배를 보관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 과거의 슈파이허슈타트(Speicherstadt, 장고 구역)는 거대한 크레인과 컨테이너 시설을 완비한 최신식 항만에 자리를 넘겨주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 / 사진. © Michael Zapf


10년간 1조2000억 들인 콘서트홀
함부르크 한자 무역센터를 만들었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건축가인 알렉산더 제라르는 2001년부터 그의 아내와 함께 카이슈파이허를 콘서트홀과 부대시설로 바꾸기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곧바로 베이징올림픽 스타디움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조그 & 드 뫼롱에 의뢰했다. 2003년 6월, 1908년에 개관한 기존 콘서트홀 라이스할레에서 계획을 발표했을 때 함부르크 시민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결국 이 기막힌 프로젝트는 2004년 함부르크 시가 운영권을 가져가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2007년 4월 2일, 시장과 문화부 장관, 건축가 피에르 드 뫼롱이 참석한 가운데 기초석을 놓았다. 공사는 원래 3년 뒤인 2010년에 끝날 예정이었고 예산은 2억4000만 유로였다. 하지만 1년 뒤 4억5000만 유로로 2배가량 늘어났고 이 와중에 관리 부실로 코디네이터가 해고되고, 건설사와의 법적 분쟁으로 공사가 1년 넘게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최종 건설 기간은 2016년 말까지 10년이 걸렸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무려 8억660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1조2000억원)까지 치솟았다.
37미터 높이 전망대 ‘엘브필하모니 광장’



파노라마 전망대 ‘엘브필하모니 광장’의 방문객들 / 사진. © E. Aerial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Großer Saal) 입구와 인접한 ‘엘브필하모니 광장’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지상 37미터 높이의 파노라마 전망대 ‘엘프필하모니 광장’은 7월 16일 불과 8년 만에 2500만 번째 방문객을 맞이했다. 총감독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는 그 기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2500만명은  정말 놀라운 숫자입니다. 전망대 플라자는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잠시 머물게 하며, 콘서트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활기차고 따뜻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기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에 매일 감동 받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줄을 서야 할 만큼 인기인 함부르크 제일의 항구 뷰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환상적인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전율을 느낄 수 있다. 하루 최대 1만 7000명이 찾는 8층 전망대 중앙의 유리를 통해 어느 누구나 12층에서 16층까지 콘서트홀 로비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 유럽에서 가장 긴 82미터의 곡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튜브를 통해 올라갈 때부터 이미 흥분은 고조된다.



82미터 길이의 곡선 에스컬레이터 / 사진. © Michael Zapf


세계 어느 공연장 로비가 매년 300만 명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엘브필하모니는 오픈과 동시에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며 기적을 만들고 있다. G20 정상들은 이 기막힌 공연장에서 부러움을 느꼈을 터. 브람스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필하모니가 130년 뒤에 엘브필하모니로 옷을 갈아입고 독일 뿐 아니라 단숨에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본다면 분명 흡족해할 것이다. 영국 타임지는 엘브필하모니를 2018년 세계 100대 명소 목록에 올리기도 했을 정도다.
세계 100대 명소 엘브필하모니
엘브필하모니를 건너편 부두에서 바라보면 늘씬한 배 모양이다. 파노라마 전망대까지는 카이슈파이허의 붉은색 벽돌이 여전히 지탱하고 있고, 그 위 108미터에 이르는 서쪽 꼭대기까지는 1100개의 은빛 유리판을 붙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지붕은 온통 특수 마감된 원판으로 덮여있고 사면에서 파도 모양의 독특한 곡선미를 자랑한다. 외형만으로도 함부르크의 랜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여기에 서쪽엔 콘서트홀, 동쪽엔 웨스틴 호텔이 위치해 투숙객은 방에서 나와 불과 5분도 안 돼 콘서트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주차장과 티켓 부스, 레스토랑과 카페 등 편의 시설도 완비했다.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의 지붕 / 사진. © E. Aerial


2600만명 관광객, 건축비 뛰어넘는 경제효과
올해 말까지 엘브필하모니를 다녀간 사람은 2600만명을 가뿐히 넘길 것이다. 물론 연일 만석이 되는 공연을 본 청중은 한정적이다. 허나 1조 2000억원의 건축비는 세계에서 엘브필하모니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함부르크에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미 그 이상의 경제 효과를 달성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상승한 도시 이미지와 부가 가치를 고려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익을 내고 있다. 예술은 늘 정치와 경제를 이긴다.
엘브필하모니 홈페이지에는 ‘모두를 위한 무한한 음악 경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음악을 누구나 쉽게 접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경험하게 하는 것은 우리 DNA에 새겨진 사명과도 같다. 이런 음악적 색채와 대비는 어떠한 ‘편협한’ 예술 형식도 배척한다.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에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콘서트와 오페라, 피아노, 현악 4중주, 가곡은 물론, 월드 뮤직, 전자음악, 팝 뮤직까지 포함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빈, 잘츠부르크, 프라하 등에 버금가는 음악 도시
알스터호수 근처의 구도심을 거닐었다.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으로 인해 헝가리에서 도망쳐 온 명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메니를 만나 돈벌이를 위해 듀오로 연주한, 독일식 펍 ‘크나이페(kneipe)’가 있던 곳이다. 이때 브람스는 헝가리 집시 음악을 완벽하게 깨우쳐 훗날 ‘헝가리 춤곡’을 작곡하게 된다. 엘브필하모니 또한 브람스처럼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며 클래식 공연장을 세상의 모든 음악을 위한 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함부르크는 빈, 잘츠부르크, 프라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음악 도시로 우뚝 선 것이다.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 전경 / 사진. © 유혁준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클라라하우스 대표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를 가다 ②]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 콘서트홀 직접 가보니▶[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를 가다 ③] '유럽 공연계 거물' 엘브필 총감독 "임윤찬, 내년 12월 첫 공연" 기자 admin@119sh.info